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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국수석 의대생의 수능 수기

최종 수정일: 4월 15일


수능 수기
수능 수기

초중학교 시절의 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생 때 반에서 아주 시끄럽고 장난끼 넘치는 남자 아이가 한 명씩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딱 그런 학생이었다. 수업을 너무 방해한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학교로 호출하시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교실 맨 뒤에 서 있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루는 부모님께서 학원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어떤 교습소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레벨 테스트인 줄 알았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보았고, 다 본 후에는 부모님께서 잠시 나가서 놀고 있으라며 시험 결과를 듣고 나오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시험은 집중력과 공감 지수 검사였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산만한 나를 걱정하셨으면 이런 검사까지 받게 하셨을까? 다행히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래에 비해서 차분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부족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하겠다는 의지는 있어서 시험 기간에는 열심히 학교 공부를 했지만, 그 마저도 지긋이 오래 앉아 있지는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을 따라 처음 PC방을 가게 되면서 점점 공부에 소홀해졌다. 시험기간 3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놀면서 보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모의고사와 첫 내신 시험을 봤을 때 당시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4등급. 내 고등학교 첫 시험의 등급이었다. 중학교 때는 내신 기간에만 열심히 학원에서 주는 자료를 풀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험과 모의고사는 달랐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2시간도 연속으로 앉아서 집중할 능력이 없었고,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도 고민하지 않은 채 무작정 교과서를 여러 번 읽고 여러 문제집을 풀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엇이 잘못된 지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고칠 방도가 없었다.


그런 상태가 1년 반이 더 지속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의 초여름이 되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에 서울대에 합격한 제자가 학교에 찾아올 건데, 선배와 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말을 하라고 하셨다. 한창 공부의 길을 잃은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상담을 신청했고, 30분 가량 선배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공부법 등을 일일이 듣지는 못했지만, 선배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이 짧은 대화는 내가 공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얘기를 나누고 내가 느낀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 선배는 원래 성적대가 상위권이었음에도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나와 가장 먼저 교실 문을 열고 국어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랬다. 나는 성적대가 상위권도 아닌데, 공부 시간도 적었고, 어떻게 공부를 잘할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으며 목표만 높게 잡았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있었고, 그 괴리는 철저히 내가 만들어 온 결과였다. 그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현실을 높이던가, 이상을 낮춰야 했다. 나는 현실을 높이기로 다짐했다.


현실이 변화하려면 먼저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나는 가장 먼저 ‘공부하는 힘’을 기르기로 했다.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봤을 때, 나는 공부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앉아서 공부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적었었다. 머리로는 오래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그 긴 시간을 버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선배와의 상담에서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공부를 해도 절대적인 공부량이 뒷받침 되어야 결과가 따라온다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일단 10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효율적인 공부방법’ 등은 생각도 안 해본 그때의 나는, 일단 하루에 10시간을 무조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제약을 스스로 걸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몸이 근질근질하고 집중이 잘 되지도 않았다.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딴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매일을 10시간은 채우고 집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지만, 공부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온전히 몰입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책상에 10시간씩 앉아있는 것은 익숙해졌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10시간 중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가 스스로 풀리는 문제가 늘어나고, 내 진짜 실력이 느는 느낌이 들자 서서히 공부에 몰입을 하기 시작했고, 공부가 재밌어졌다.


몰입을 시작하자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밤공기가 그토록 상쾌했다. 처음으로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느꼈고, 처음으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아직도 독서실 앞 골목길을 밤에 걸어가면 그때 기억이 나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요즘도 가끔 열정이 마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 골목길을 다시 찾아간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의 여름방학은 공부하는 힘을 기르면서 기반을 다졌다. 2학기가 되자 슬슬 내신과 수능 중 무엇에 더 집중할지 골라야 했는데, 여름방학의 특훈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저 그런 내신 성적과는 달리 모의고사 점수가 잘 나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내신도 끝까지 챙기되, 수능 공부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2학기 때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기본 개념들을 직접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 한 공부가 시간 낭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지만, 개념이 불안하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의미가 없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과목을 개념부터 다시 인강을 수강했고, 강의 내용을 전부 내가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반복했다. 그 후 평가원 기출 문제를 내신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풀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모든 과목을 개념과 기출을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실력이 크게 올랐다고 느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공부를 하기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되었다. 이때 신기했던 점이, 내신 공부를 하는 시간은 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오히려 내신 점수와 등급은 올랐다. 내가 내신 점수가 낮은 것은 암기에 적합하지 않은 성향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했었지만, 사실은 그냥 실력 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1학년도 수능이 끝났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드디어 내가 주인공이라는 설렘과 말로만 듣던 고3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공존했다. 내 수능이 끝난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그 날은 공부를 거의 못했던 기억이 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되자, 인터넷에 성적표와 함께 각종 수험 수기들이 올라왔다. 글로 읽기만 해도 정말 멋있게 느껴졌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꼭 멋있는 수기를 적겠다고 다짐하며 고3 수험생이 되었다.


고3 겨울방학은 일단 아는 것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다. 적용을 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아는 것이 많아야지 잘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2 때 들었던 강의와 기출을 복습하고, 새로운 강의를 찾아 듣기도 했다. 특히 국어와 수학에서 처음으로 ‘문제 자체’가 아니라 ‘나의 태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때까지 했던 공부는 굉장히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공부라는 깨닫고, 정말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서 도움이 될 공부만을 하려고 했다. 이 시기에 “정말 성적이 오르는” 공부 방법에 대한 생각을 그 누구보다 많이 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 결과 1년간 이렇게 공부하면 실력이 늘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점점 걱정이 기대로 변해갔다.


3월, 개학을 하면서 듣고 있던 강의를 모두 완강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내가 직접 문제를 풀어나가며 알아가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강의를 듣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문제를 미친듯이 풀었다. 특히 수학은 정말 많이 풀었다. 3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간 주간지를 포함해서 시중 문제집만 50권 넘게 풀었다. 수학과 과학 탐구는 시중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집을 푼다는 각오로 공부했고, 국어는 문제의 양보다는 생각의 양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때 가장 큰 고민이 바로 N수생과 현역의 공부량 차이였다. 현역은 저녁 이전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고, 내신 공부나 여러 활동들이 있기 때문에 재수생보다 공부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능이라는 단 하나의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 공부량 간극을 극복해야만 했다.


따라서 나는 공부량의 기준을 재수생으로 잡고, 학교에서도 “이 시간에도 재수생들은 열심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공부했다. 1-2교시는 국어, 3-4교시는 수학, 점심시간은 영어, 그 이후는 탐구 공부를 하는 등 최대한 수능시간과 맞춰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잡았다. 물론 독서실이나 자습실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지만 오히려 시끄러운 환경을 대비한다는 마음가짐과, 수능 시험장은 어차피 학교의 교실이라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코로나 시기와 겹쳐서 비대면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운이 좋게 자습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도 하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0시간 이상씩 공부를 할 수 있었다.


6월 모의고사는 처음으로 평가원 시험지를 현장에서 응시할 수 있고, N수생들과 같이 보는 중요한 시험이다. 수학과 국어는 상반기에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한 만큼,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았다. 겨울 방학 때 고심했던 공부 방법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탐구에서 생각보다 너무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6월까지 수학과 국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라 탐구 과목은 개념과 기출 이외에는 다른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시험장에서의 실력 부족을 피부로 체감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탐구 공부 시간을 많이 늘리기로 했다.


그렇게 배웠던 내용을 적용하며 문제를 많이 풀고, 피드백을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하반기는 시간이 정말 금방 갔던 것 같다. 6월 모의고사를 보고 조금 문제를 푸니 9월 모의고사였고, 모의고사를 조금 더 푸니 날씨가 쌀쌀해졌다.


수능 2-3주 전부터는 매일 수능과 똑같은 시간표와 수능 ASMR로 실전 연습을 하였다. 장소도 독서실, 학교, 스터디카페 등을 옮겨 다니며 최대한 다양한 환경에서도 시험에 똑같이 집중할 수 있게 연습했다. 특히 국어의 경우 컨디션에 많이 좌우된다고 느껴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험 빌런 ASMR 같은 것도 들으면서 모의고사를 풀었다. 다행히 실제 수능 시험장에는 빌런이 없었지만, 여러 환경에서 연습을 한 것은 수능장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전 모의고사는 신기한(?) 점수도 몇 번 받아봤지만 앞으로 같은 문제는 안 틀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점수보다는 피드백에 집중했다.


1주일 전부터는 EBS나 지엽적인 개념, 멘탈 관리 등도 꼼꼼히 신경 쓰되, 문풀량도 줄어들지 않게 시간분배를 하였다. 사실 수만 번은 생각해봤을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꿈같았고 이러다 잠에서 깨면 고등학교 2학년일 것 같았다. 아래는 수능 6일 전에 폰으로 썼던 일기를 그대로 붙여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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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6일 전. 전주 금요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그냥 낮잠을 3시간 잤다.

아침에 도저히 깨어있을 수 없어서 그냥 집 와서 잤다.

빨리 끝내고 싶다. 피 말리는 시간이다.

다음 주 이 시간은 무슨 기분일까.

잘할 수 있을까.

사실 못 볼 거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고 긴장도

아직은 크게 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 이유 있는 자존감일까.

그건 다음주가 되면 알 수 있겠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마무리 암기들과 그냥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끝까지 하나라도 더 알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게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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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해온 관성 때문인지 생각보다 수능이 다가온다고 큰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똑같이 일어나서 내 책상 앞에 있는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항상 같지는 않나 보다. 수능 이틀 전 밤을 거의 꼴딱 세웠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잠이 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빨리 잠에 들어야 하고 분명 몸은 피곤한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지 않았는데, ‘내일도 이렇게 잠을 못 자서 수능을 망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결국 그 날은 1시간밖에 못 잤다.


그래도 차라리 내일이 아니라 오늘 잠을 못 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처럼 아무도 없는 독서실 문을 열고 국어공부를 조금 하다가 수험표를 받으러 학교를 갔다. 다행히 배정받은 시험장도 바로 앞의 학교였고, 홀수형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수능이라는 실감이 안 났지만 마지막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독서실로 다시 향했다. 2년 동안 함께한 독서실에 들어서자 뭔가 감정이 일어날 뻔 했지만, 억누르며 마지막 실전 모의고사와 EBS를 정리했다. 그리고 내일 볼 몇 가지 정리본들만 가방에 넣고 집으로 발걸음을 뗐다.


나는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능 전날, 1년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게 공부했나?’를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이 질문이 내 하루의 기준이었다. 이 날도 마지막으로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를 보고, 모든 불안과 걱정이 씻겨 내려갔다. 이제는 수능을 망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수능 당일에는 6시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밥을 먹었다. 아버지께서 시험장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는데, 가는 길에 담백한 말로 긴장을 풀어 주셨다. 긴장되냐는 말씀에 ‘집중할 정도로 적당히 긴장했다’라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것 같아 보인다. 좋다.'라 말씀해 주신 것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교실로 들어오니 7시 10분 정도였는데 교실에 두 명 정도가 먼저 와 있었다. 책상도 넓었고 화장실도 가까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생각보다 더워서 아예 외투를 처음부터 다 벗고, 얇은 긴 팔 하나만 입고 종일 시험을 봤다.


국어 행동 강령과 몇 가지 독서 지문들을 보면서 예열하고 있으니 슬슬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은 같은 반 친구였는데, 전 날 이미 서로 아는 척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예비령이 치고, 가방과 책들을 전부 교실 앞쪽으로 보내고 국어 시험지를 받아서 책상에 올려 놓았다. 이때까지 해온 모든 국어 공부가 모두 이 한 시험지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이상했다. 시험 시작 전까지는 미리 암기해둔 독서 문장을 되뇌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내 파본검사를 하였는데, 이때 놀랐던 것이 경제 지문이 방금 아침에 예열지문으로 사용했던 독서 지문과 거의 동일했다. EBS연계 지문이었고, 내가 가장 약한 경제 지문이어서 시험장에 가져왔는데, 정말 비슷한 지문이 수능 시험지에도 실려 있어서 놀라웠다. 사실 파본 검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독서 지문 길이가 짧고 문학도 EBS에서 많이 연계되어서 크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때 내 머리는 긴장하지 않았다고 세뇌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국어시험을 보는 동안 심장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다. 심장 소리를 스스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엄청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풀이의 순서가 언매-독서론-독서-문학 순서이다. 종소리가 울리자 바로 언매로 넘어가 달리려고 했는데… 언어부터 답이 보이지 않았다. 답을 고른 문제도 좀 헷갈리고 답이 안 보이는 문제를 넘겼는데, 매체도 시간이 오래 걸리며 답이 안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이 순간에 그냥 바로 망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언매에서 막혔을 때는 무조건 빠르게 넘기자는 행동 강령이 있었고, 이런 상황을 미리 많이 대비해 놓았다. 다행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고 독서로 넘어갈 수 있었다.


독서는 일단 가장 만만한 기술 지문부터 처리했다. 조금 찝찝한 부분도 있었지만 일단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제 지문과 철학 지문은 그냥 풀면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그냥 연습했던 생각들과 시험 루틴, 대처법 등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로봇처럼 읽고 풀었다. 아마 모의고사를 많이 보지 않았으면 멘탈이 진작 무너졌을 것이다. 다만 경제 지문의 <보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될 것 같아서 일단 맨 마지막으로 넘겼다.


문학은 EBS의 도움으로 적정 시간 안에 끊으니 대략 5-10분 정도가 남았다. 먼저 헷갈렸던 언매 문제들을 다시 보고, OMR 마킹을 한 후 넘겼던 경제 지문의 <보기> 문제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적게 남아서 확신을 갖고 답을 고를 수가 없었다.


실전 모의고사에 비해서 너무 우당탕탕 풀어서 점수에 대한 감이 아예 없었지만, 중간에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계획했던 대로 ‘그냥 100점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과목들 다 맞아야지’ 라 세뇌하며 난이도나 점수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으려고 했다.


수학 오답노트를 조금 보다 보니 수학 시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수학은 실모들이 어려웠던 건지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체감 난이도가 쉬웠다. 정말 꼼꼼히 풀어도 30분 가량이 남아서 몇 번 검토를 더 해봤다. 1년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쓴 과목이기에 틀린 문제가 있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검토를 하였다. 다행인 점은 이때 계산 과정에서 실수가 있던 문제를 하나 찾았다. 이미 저질러버린 실수를 검토 과정에서 다시 찾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2교시가 끝나고 긴장도 살짝 풀리면서 ‘내가 진짜 수능을 보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났다. 점심은 간단히 도시락을 먹으면서 탐구 정리본을 쭉 읽어봤다.


전체적으로 수험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빌런도 없었고, 아무도 떠들지 않고 자기 시험에만 열심히 집중하는 분위기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영어와 한국사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봤는데, 영어가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어서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어졌다. 한국사까지 보고 나니 수능이 거의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하지만 탐구가 시간은 길지 않지만 입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깐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초콜릿을 먹으며 집중력을 잡고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물리1과 생명1을 봤는데, 둘 다 시간이 정말 부족해서 정신 없이 막 풀어 버렸다. 물리는 두 문제 막히는 문제가 있어서 넘겼는데 다행히 다시 풀 때는 풀이가 보였지만, 생명은 한 문제가 끝까지 안 보이고 시간도 없어서 결국 못 풀고 찍었다. 다만 실수가 아니라 당시에 모르는 문제였기 때문에 전혀 후회는 없다. 실제로 두 시험지는 1등급 컷은 각각 43점, 42점으로 역대급 난이도였다.


그렇게 모든 시험이 끝나고 나는 제2외국어를 신청했다가 취소했기 때문에 큰 대기실로 이동했다. 확인 절차가 오래 걸려서 거의 1시간을 대기해야 했는데, 이때야 비로소 수능이 끝났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점수는 확신이 없지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쏟아 부어서 후회는 없고, 너무 피곤해져서 집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뭔가 홀가분하면서도 찝찝하고 기쁘면서도 불안한 감정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노력을 남김없이 연소시키고 온 대기실에서의 그 감정은 아직도 기억이 나고, 아마 평생 잊기 힘들 것 같다.


그렇게 확인 절차를 마치고, 소지품을 돌려받고, 교문 밖으로 나가자 학부모님들이 엄청 몰려 있으셨다. 늦어진 확인 절차 때문에 모두 애타게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으셨다. 이때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두리번거리시는 부모님을 한 눈에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안아주시며 수고했다고 말씀하셔서 눈물이 고였다. 차에서 눈치를 보시며 못 물어보고 있는 부모님께 후회는 없게 보고 왔다고 말씀드리니 조금은 안도하시는 것 같았다.


원래 식곤증 때문에 배부를 때까지 밥을 안 먹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마음 편히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탐구 답지가 올라올 시간이 되어서 채점 시스템에 가채점표에 적힌 답을 옮겨 적었다.


먼저 영어를 채점해 보았다. 1등급은 기대하고 있었지만 예상 못한 100점이 나왔다. 시작이 좋다는 생각과 함께 심호홉을 하며 수학을 채점해보았다. 수학이 100점이 뜬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6월과 9월에 각각 실수로 한 문제씩 날려먹은 뒤로 실수를 안 하는 연습을 많이 했기에 정말 기뻤다.


다음은 탐구를 차례로 채점했는데, 각각 50, 47로 푼 문제들은 다 맞은 것을 보고 내가 진짜 원하는 학교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들떴다.


마지막은 가장 불안했던 국어였다. 국어는 잘 봤다고 생각한 시험지도 처참한 점수를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점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제발 90점만 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채점을 했는데 93점이 떴다. 너무 기뻤고 작년 자료들을 찾아보니 논술을 응시하지 않아도 되는 점수임을 알고 나니 몸에 힘이 쫙 풀리면서 간만에 정말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바로 부모님께 점수를 알려드렸다. 부모님은 담담하게 수고했다고, 잘 될 줄 알았다고 말해 주셨는데, 나중에 말씀하시길 속으로는 엄청 기뻐하셨다고 한다. 아직 성적표도 안 나왔고, 원서 지원, 정시 면접 등의 관문이 남아있기 때문에 흥분하기는 일렀다.


그렇게 어찌저찌 성적표도 잘 받고 정시 면접까지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시험이 매우 어려웠어서 총 4개를 틀렸음에도 백분위를 전부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교 합격 소식은 과외를 하는 도중에 확인했는데, 워낙 지원 등수가 높아서 어느 정도 합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날아갈 듯 기뻤다.


아쉬웠던 순간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수능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1년 반 정도의 시간동안 나는 매일을 후회하지 않게 살자고 다짐했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서 아쉬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이 긴 여정동안 놓친 것도 많다. 하지만 나는 꼭 성적과 대학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도움이 되는 훨씬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 열정을 쏟아 부은 10대의 마침표가 자랑스럽다.


수능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꿈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에 걸맞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안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첫 시험 117등이었던 아이도 수능 백분위 전국 수석을 이뤘다. 성공의 열매도 노력의 거름이 클수록 달콤하다고 한다. 지금의 시기는 열매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힘냈으면 한다.


-수능 백분위 만점자의 수능 수기



[이제는 여러분이 증명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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